더듬어 감각하기
사람들은 무수한 다른 곳들에 존재의 궤적을 그리다 사라졌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흔적은 공간과 함께 뚜렷해지기를 혹은 소실되기를 거듭했다. 그 곳에서 마주친 소리와 냄새, 감촉, 그리고 망막에 비춰졌을 상想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이들은 스러져 갔고, 인터넷이라는 심해 속에서 내가 발굴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사각 프레임과 흑백 필터로 여과된 이미지들이었다.
한국이라는 섬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나와 당신, 그리고 같은 울타리 안에서 다른 시간축을 살았던 그들에게, 많고 많은 장소들 중에서도 원형적인 공간으로서 집은 항상 온갖 욕망이 투사된 채로 존재해 왔다.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는 터전으로서, 혹은 사회적 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혹은 부를 증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 이러한 이미지들로 당신과 나의 앞에 나타나기까지 어떤 형상들을 거쳐 왔는지, 기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더듬어 보다가 도달한 지점은 20세기 초•중반의 한반도에서 ‘문화文化 주택’이라고 일컬어 졌던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6.25 전쟁 직후에 건립된 문화주택은 모든 것이 없어진 남쪽의 대한민국에서 새로이 건립되었고, 그래서 이것이 시작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것의 모습들을 할 수 있는 한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물리적인 형상을 둘러싼 정황들도 감각하려 애썼다.
‘불광동 ICA주택’ 혹은 ‘운크라UKRA주택’ 등에 해당되는 실물 공간(A)과 그 장소로부터 파생된 건축적 이미지들 그리고 사회적 이미지들(A’)은 나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편린(A’’)이 되어 부유하다 캔버스위에 서로 병치되고 중첩되며 얹혀진다.(A’’’) 국토재건사업 필지의 모양에서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까지 거시적인 것부터 미시적인 것 순으로 레이어가 하나씩 쌓이고, 각 개체의 윤곽선은 변형되지 않고 떼어진 그대로 삽입되며, 그것들이 가지고 있던 표피의 물질성들은 탈각된 후 다르게 덧씌워 진다. 그렇게 나의 안에서 둥둥 떠다니던 불완전한 편린들이 CAD로 컷팅된 시트지와 붓을 거쳐 물감으로, 관습적인 사각 프레임 안에 한데 포개어진다. 나는 이러한 방법론이 현실의 한 장소가 여러 층위의 맥락들을, 장소성을 내포하고 있는 현상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끊임없는 테이핑과 마스킹. 지난한 공정을 반복하다 거리로 나오면 그들의 유산을 뒤이어 현존하는 공간들을 마주하다가도, 직접 가보지 않고 이미지로만 접하는 공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더듬어 그 너머를 상상해 보는 일은 나로 하여금 경쾌한 붓질을 통해 과거와 지금을 탐색하게 한다. ‘페인팅’(paint -ing)이라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나의 여행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회화적 공간을 통해, 익숙한 것과 생경한 것이 혼재하는 벌어진 틈새 사이를 관람객들로 하여금 노닐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