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모순을 조율하기
공간디자이너는 사람의 내면에서 서로 부딪치는 모순된 욕망을 조율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품어낼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사람들의 물리적 만남을 장려하는 장소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실제적 구조물을 다루기 때문이다.
나는 공간 이미지와 추상 도형을 겹쳐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겨해왔다. 이 작업을 통해 공간을 추상화하고 추상화를 통해 공간을 연상하는 일을 반복했으며, 공간이라는 존재를 해석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기본 도형인 사각형은 그림속의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때는 바우하우스식 건물의 창문으로, 어떤 때는 벽돌로, 어떤 때는 평면도처럼 보였다. 반대로 고층빌딩이 빽빽한 도시 풍경이나 실제 건물 내부를 그대로 모사하고 나면, 그들의 모습은 일견 크고 작은 사각형으로 메꾸어진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돌이켜 볼 때 이 작업은 대상을 환원(reduction)시키고, 환원된 대상에 다시 살을 붙이는 일이었는데, 이러한 시각적 사고 과정은 단순성(simplicity)을 맹렬히 추구하던 모더니즘 공간의 기풍(ethos)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물질마저 어떤 껍질이라고 여기고 탈물질화된 공간을 옹호하는 21세기의 건축적 실천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실로 공간은 그것의 구조적, 기하학적 형태 안에 인간의 이상과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욕망을 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기둥이 없는 대형 박스형 실내공간을 대형 할인점(Big-box Stores)이나 쇼핑몰로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인류가 에어컨이라는 신기술을 이용하여 날씨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육체적으로 쾌적한 공간에서 예측가능한 사고파는 거래 행위를 이어 나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습성은 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성인 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IT 기술과 함께 직접 물리적으로 대면하지 않고도 검정색 직사각형 창(i.e., screen of digital devices)이 품고 있는 화려한 온라인 공간을 통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다시 특정한 건축적 환경의 지반이 된다.
이와 같이, 그림을 통해 공간을 이해하고자 했던 나의 시도들은 단지 형태 분석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밀접하게 관련된 사회와 인간의 면모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덕분에 나는 흥미롭고도 역설적인 지점을 발견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 단순화된 도형들을 이용하고 그것을 통해 빠른 데이터와 피드백을 주고받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의 마음은 충족되기 보다 점점 더 목말라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새로움과 편리함을 열망하면 열망할수록, 현대인은 고정된 정체성이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동물적인 접촉을 강렬히 열망하는 마음을 알게 모르게 도외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간 디자이너는 서로 모순되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고려하고 공간 설계에 적용하며, 그를 통해 동시대의 인간들이 무의식적으로 소외시켜온 그들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도록 도울 수 있다. 나는 인간의 내적 갈등이 잘 조율된 매력적인 공간은 개개인 뿐만 아니라 그 곳 바깥의 지역 공동체까지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반영한 공간은 새로운 것을 쫓는 현대인의 성향을 상쇄시킴으로써 어떤 심리적 균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디자인을 실현하고 싶다.